은평소개

응암1동

응암1동

동 유래

“포수(砲手)마을”이란, 지명은 백련산 매바위와 관련되어 생긴 이름으로 본래 매는 동네에 들어오는 잡귀 등 모든 병을 막아주는 동네 수호신으로 생각하여, 매에 대한 존경심이 매우 컸다 이런 까닭에 예전에 무당들이 주는 부적인 삼두일족응(三頭一足鷹)과 삼두매를 보시면, 대부분 매 그림으로 되어 있다. 당시 이지역 주민들도 매가 다른 곳으로 날아가면 동네가 망한다고 하여 매바위에서 동북쪽 약 800미터 쯤 되는 곳, 현재 서부병원 길건너 골목 안쪽을 포수마을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.
매가 움직이면 포수가 쏠 것이므로 매는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을 것이라는 옛 선인들의 지혜에서 나온 것으로 우리민족의 순박한 단면을 엿 볼수 있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. 예전부터 이 동네에서 유명한 포수(砲手)말 움파는 매년 가을이 되면 인근 마을인 시루메 즉, 지금의 증산동 그리고 역촌동, 신사동, 구산동 등에 있는 밭 파를 사서 겨울철에 움막속에서 파뿌리를 한 움큼 짚으로 묶어 볏집 더미속에 넣고 물뿌리개로 물을 주어 키워낸 누런파를 말하는 것으로 깊은 겨울에 이것을 장안에 내다 팔았는데 떡국 양념으로 그 인기가 대단 하였다고 한다. 또한 포수(砲手)마을로 불려지게 된 또다른 이유는 동네 사람들이 이곳에 움막을 치고 한 겨울 매서운 추위를 이겨내는 동안 새끼꼬기, 동구미엮기, 장기두기를 하고, 또한 포수(砲手)들이 모여 휴식를 취하며 기거했던 곳이라 해서 지어졌다고 한다.

은평구 지도 - 응암1동

동 역사

  • 백제시대

    북한산 하의 위례성의 일부

  • 고려1308년
    (충렬왕 34년)

    한양촌의 일부

  • 1395년(태조4년)

    한성부 북부 성외지역

  • 1895년(고종32년)

    한성부 북서 연은방 말흘산계의 와산동ㆍ응암동 포반동 포수동에 속함

  • 1911년

    일제강점기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로 경성부 은평면 포수동, 응암동, 와산동에 속함

  • 1949년

    8월 14일 대통령령 제160호로 서울시에 편입, 서대문구 응암리로 서대문구 은평출장소 관할에 속함

  • 1979년

    10월 1일 대통령령령 제9630호로 서대문구를 분구, 시조례 1363호로 은평구 응암동1ㆍ2ㆍ3동 설치

  • 2008년

    6월 기존의 응암1·2·3·4 동을 응암1·2·3 동으로 통폐합

주요 현황

보유 현황 없음

담당자 정보

콘텐츠 정보관리
  • 담당부서 응암1동 복지행정팀
  • 연락처 02-351-5212

주의 최종수정일2022.01.23